제목 : 짧은 지리학 개론 시리즈 장소

지은이 : 팀 크레스웰

초판 1쇄 발행 : 2012년 6월 29일

출판사 : (주)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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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그 중에서도 인문지리학이라는 개념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인문지리학이라는 틀 안에는 도시, 경제, 문화, 정치, 인구, 사회 등과 같은 인문의 모든 현상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중에 편찬된 많은 인문지리학 개론서들의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개론서를 쓰는 교수마다 자신의 관심분야가 따로 있으며, 그에 따라 인문지리학이라는 범주 내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과 소홀히 다루는 부분 등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인문지리학을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인문지리학은 ‘장소’에 대한 학문이라는 점입니다.


인문지리학을 배우기 전까지 우리는 ‘장소’라는 말을 참 쉽게 썼습니다. “약속 장소를 정하다.” “줄곧 같은 장소에만 있었다.” 이와 같은 문장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앞의 문장에서는 약속 대상을 만나는 어느 곳을 뜻하는 의미로 장소라는 말을 썼으며, 뒤의 문장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던 어느 지점을 뜻합니다. 앞서 인문지리학은 장소에 대한 학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와 지금 예시로 든 장소의 개념이 완벽히 같을까요? 


장소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예시가 있습니다. 새로 배정받은 기숙사에 도착했다고 가정합시다. 모든 기숙사의 방에는 같은 모양의 침대, 책상, 벽장이 있습니다. 기숙사의 방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어느 방의 침대에는 커피를 엎지른 자국이 있을 수 있고, 다른 방의 책상에는 칼집이 나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방의 벽에는 못 자국이 나있거나, 또 다른 방의 벽장은 낙서가 숨어있을 수도 있죠. 이 모든 흔적들은 과거 어떤 시점에 누군가가 이 방에 살았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익명의 공간에 역사가 있었으며, 방의 전 주인에게는 특별한 무엇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만약 내가 방에 새로운 포스터를 붙이거나 가구를 재배치하고, 새로 정리를 한다면 그렇게 공간은 나만의 장소가 됩니다.


다른 예시가 있습니다. 북위 40도 46분, 서경 73도 58분. 이 설명은 특정 지점의 위치를 말해줄 뿐이며, 의미가 없는 어떠한 지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좌표는 뉴욕시 맨해튼의 한 지점을 가리킵니다. 비행기 2대가 북위 40도 46분, 서경 73도 58분으로 날아갔다는 말과, 비행기 2대가 쌍둥이빌딩으로 날아갔다는 말은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는 이미 어느 장소를 알고 생각하고 있으며, 머릿속에 충분히 하나의 이미지로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문지리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장소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며 모든 행위를 하는 곳은 바로 장소입니다. 우리는 방이라는 장소에서부터 넓게는 지구라는 장소에 살고 있습니다. 곧 장소는 세계를 보고, 알고, 이해하는 방식이게 됩니다. 장소는 우리가 아는 세계 그 자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학문인 인문지리학은 장소에 대한 이해입니다. 


팀 크레스웰의 책인 『장소』는 이러한 장소라는 개념에 대해 전문적으로 설명된 책입니다. 먼저 1장에서는 장소라는 개념이 왜 중요한지, 장소와 공간 혹은 경관이 지리학에서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2장에서는 <장소의 계보학<이라는 이름으로 지리학에서 이러한 장소라는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켜왔고, 장소가 없어질 것이라고까지 했던 지금엔 인문지리학자들이 장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3장인 <‘지리적 장소감’읽기> 부분에서는 유명한 인문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도린 매시(Doreen Massey), 존 메이(Jon May)의 글을 중심으로 ‘지구적 장소감’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4장 <장소로 연구하기>에서는 장소 개념이 연구된 사례와 장소 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5장 <장소에 관한 자료>는 일종의 부록으로 각종 추천자료 등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우리가 장소라는 말을 쉽게 썼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그만큼 익숙하게 써왔던 단어 하나에 이렇게 많은 개념과 생각이 들어있었으니 낯선 마음에 더욱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1장 정도만 이해한다 하더라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문지리학사가 장소라는 개념으로 정리된 2장은 지리학사를 배울 거면 어차피 한 번은 봐야할 부분이며, 4장의 예시부분은 앞에서 개념에 관한 정리만 잘 해놓았다면 생각보다 접근하기 쉬워 보입니다. 실제 우리 피부에 닿는 내용들로 잘 정리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장의 경우인데, 인문지리학에 관심이 있고, 조금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하비, 매시, 메이의 학문을 영어 원서가 아니더라도 잘 번역된 글을 통해 접해볼 수 있는 기회이니 충분히 접근해볼만하다 생각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장소』는 우리가 인문지리학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도시지리, 경제지리, 문화지리, 사회지리, 정치지리, 인구지리, 교통지리가 아닌 정말 본질적인 인문지리학의 개념을 생각해본 책입니다. 이런 기본에 대한 이해를 한 뒤에야 충분히 인문지리학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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