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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8 목동을 기억하며

어느 하나를 떠나보낼 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려 애씁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식으로 애도하는 것 부터, 일상 속에서 무심코 스쳐지나갔던 길이 사라질 때도 우리는 그를 추억하려 애씁니다.





지난 2014년 2월 8일 토요일, 저는 아현동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아현고가 철거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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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인천에서 서울을 매일 다니는 길로 아현고가를 이용했습니다. 아현고가에 접어들면 '아 이제 서울역에 다 왔구나', 혹은 '이제 잠시 눈이나 붙여둬야겠네'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6년 정도를 이용하던 도로가 이제는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자동차는 같은 경로를 달릴 것이고 고가도로가 사라진다해서 제 삶의 큰 부분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마음이 남아 철거 전 도로를 보내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제가 찍은 사진에도 나오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고가를 보내는데 함께했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나눠주는 것도 없었고, 왁자지껄한 유명 가수의 공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모두 고가에 모여 고가를 추억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장소도 애착을 붙이는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단순한 이동 경로의 하나인 고가도로를 보내는 행사에도 수많은 시민이 모인 것 처럼 우리는 장소에 '장소애'라는 애착을 갖곤 합니다. (추후 지리학자 이푸투안의 '토포필리아'라는 책도 정리해 올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10월 14일 수요일. 저는 목동에 있었습니다. 저는 넥센 히어로즈의 팬입니다.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야구장에 갔고 하다못해 혼자서도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봤습니다. 특히나 이번 2015시즌에는 시즌권을 가지고 야구를 봤었죠. 비록 전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자리'에서 야구를 볼 때는 행복했습니다.(물론 이겼을 때 정말 행복했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포스트시즌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와중에 목동경기를 시간이 됨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 것은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한 목동을 가고자 노력했고 결국 목동 마지막 경기를 보고 말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상대팀의 세레모니를 다 본 뒤에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에 가서 한 번 앉아봤습니다. 304블럭 2열 13번. 오른쪽엔 복도가 있어서 우측에 간단한 짐을 놓기에 좋은 자리, 너무 가운데 치우치지도, 너무 응원석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시야가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는 이 자리에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한켠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목동야구장. 반대편의 주민들께는 죄송하지만 바로 옆의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구장, 외야석이 없는 구장으로 쿠키커터식의 구장이 산재한 우리나라 야구환경에서 보기힘든 구장이 바로 이 목동야구장이었습니다. 비록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꽤 되지만 걸어가며 오늘의 라인업이나 뉴스기사를 보며 걸어가던 구장이 바로 이 목동야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더이상 목동야구장에 갈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갈 수야 있을 겁니다. 아마추어야구는 계속 진행될테니까요. 하지만 한국시리즈까지 열렸던 '프로'구장으로서 목동야구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쉽습니다. 떠나가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구장을 홈구장으로 써야하고 오히려 저는 집에서 구장이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니까 큰 불만을 품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쉬운건 여전합니다. 제가 제대로 야구를 다시 보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홈구장이라 불렀던 야구장이고, 수년 간의 기록이 있던 구장이며 저와 다른 히어로즈 팬 모두에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장소일테니까요. 


삼성라이온즈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성라이온즈의 경우 구단에서 신구장건설을 주도적으로 펼쳐왔으니 맺고 끊는데 있어 확실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서울시와의 줄다리기 끝에 얻은 신구장을 가진 히어로즈의 입장에선 공식적인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목동을 추억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번 찍고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웃으며 목동구장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개방행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비용이 든다면 유료개방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기억하길 원하는 팬은 목동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웃으며 목동을 떠나보내며 신구장을 바라보겠죠. 지금으로서는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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