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Memories of the Gaze_수동정미소, 2012>

이재용의 <Memories of the Gaze>연작은 참 흥미롭습니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이 사진은 정미소를 찾아가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대에 여러 번 촬영해 한 화면에 집적한 사진 작업입니다. 같은 장소를 수십 번 찾아 찍지만 정확한 지점에서 같은 각도로 똑같은 사진을 다시 찍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놓은 이미지는 진한 안개가 낀 풍경처럼 두루뭉실하고 흐릿합니다. 흐릿한 윤곽의 이미지는 '기억의 시선'이라는 작품명이 의미하듯 우리의 왜곡되고 희미해지는 기억의 속성을 나타내며, 미묘한 변화들을 포착해 그 순간의 기억을 다시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꽤나 '지리적인' 사진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비드 하비에게 있어 장소란, 공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건부적 형태의 '영원성'을 띠는 개념입니다. 장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 내의 강력한 제도적 힘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실체는 공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경계짓기를 하고 내적 질서를 형성하면서 한동안 상대적 안정성을 성취한다. 그런 영원성은 (한동안) 배제적인 방식으로 공간의 일부를 점유하게 되며, 따라서 (한동안) 하나의 장소, 즉 장소의 실체를 규정한다. 장소 형성의 과정은 공간성-일시성을 창조하는 과정의 흐름으로부터 '영원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영원성'은 그것이 아무리 단단해보일지라도 영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항상 '끊임없이 쇠퇴하는 것'으로서 시간에 종속되어 있다. 영원성은 창조, 지속, 소명의 과정에 종속되어 있다. (Harvey, 1996, Justice, Nature and the Geography of difference, Blackwell Publishers, Cambridge, MA, pp. 261)

이렇게 장소란 단순히 멈춰있는 하나의 사진이라기보다 이재용의 작품처럼 시간이 누적되며 고정된듯 고정되지 않은 개념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한국인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쌀을 정미하는 곳에, 누적된 시간만큼 머물러있는 장소를 담아낸 멋진 작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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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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