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0일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던 글입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분명 현대와 히어로즈는 공식적으로 연결된 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팬의 한 사람으로 마음가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게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매일 하는 컴투스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00년부터 05년까지 선수 로스터가 업데이트 되었다. 지금까지는 06년부터 13년까지의 선수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으나 두 배 이상 로스터가 확장된 것이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꽤나 반가운 이름의 선수와 팀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바로 현대 유니콘스이다.


처음 야구장을 갔던 나이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90년대 말의 어린이 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과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경리 누나와 함께, 만원 사례를 이룬 도원구장의 3루 외야석 부근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본 첫 야구경기는 현대와 삼성의 경기였다. 당시 야구를 잘 몰랐던 나에게 이승엽이 있던 삼성은 가장 강한 팀이었다. 그런데 현대라는 팀은 삼성을 맞서서도 곧잘 잘했다. 당장 내가 직접 관람했던 경기뿐만 아니라 간혹 텔레비전을 돌려가며 보는 경기에서도 현대는 지지 않는 팀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사촌과 주변의 넉넉한 집의 친구들은 모두 현대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집에서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 집에 놀러가서 녹색과 검은색이 들어간 유광잠바나 선수들의 사인볼을 한 번 씩 만져보며 현대라는 팀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방구에서 팔던 프로야구 선수 스티커 첩을 모을 때도 먼저 현대 선수들을 모으고 난 다음에야 다른 선수들을 모았었다. 강한 팀, 잘 나가는 팀으로서의 현대는 어렸을 때 나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뒤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왔다.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때가 있었다. 현대에게도 시련의 시간이었다. 뉴스에서 전하는 현대와 관련된 소식은 경기 승리 소식이 아닌 아들 간의 싸움 소식이 더 잦게 들리는 때였다. 나에게 그런 것은 어쩌면 하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게 곧 그보다 더 심각한 뉴스가 들려왔다. 현대가 인천을 떠난다는 뉴스였다. 나는 구단을 욕하거나 나무라는 말 대신 “왜?”라는 질문만 할 뿐이었다. 기업의 경영 문제와, 서울 입성 문제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었다. 결국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겠다는 그들은 수원으로 떠났으며, 나는 다시 야구장에서 현대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떠났다고 했음에도 마음속에서 현대를 무작정 지워버리지는 못했다. 기업의 사정,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을 수긍하고 난 다음, 여전히 현대의 승리를 기원하고 듣길 원했다. 수원은 가지 못했지만 꾸준히 먼저 야구 소식이 들리면 현대의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첫 해인 2004년, 야자를 하는 와중에도 이어폰은 현대의 한국시리즈를 중계하는 방송으로 가득했다. 유달리 길었던 한국시리즈는 11월에 와서야 결국 현대의 승리로 마무리 지어졌다. 아직 현대라는 강함의 아이콘은 내게 유효했다.


하지만 난 이런 현대를 떠나고야 말았다. 그들이 비록 내 도시를 떠났음에도 꾸준히 짝사랑하듯 동경해온 현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현대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법적으로는 현대라는 팀은 소멸되었으나 그 맥만큼은 히어로즈가 이어나가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팀은 내가 알던 팀이 아니었다.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가 현대를 맡은 뒤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팀이 어려운 것은 십분 이해한다 생각했지만, 막상 현대의 주축이었던 선수들을 하나하나 내보내는 장사꾼의 모습은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다. 하나씩 선수들이 구단 운영을 위한다는 목적아래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이러다 언젠가는 구단까지 공중분해가 될 것처럼만 느껴졌다. 폭풍 속에 선수단마저 활력을 잃었고 팀은 곤두박질치며 끝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도저히 이런 팀에는 애정을 줄 수 없었다. 나는 히어로즈를 떠났다.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반전의 계기는 2011년 말 즈음이었다. 전처럼 야구 뉴스를 보지 않던 중 지나가듯 히어로즈의 소식을 들었다. LG로 서울 입성금을 대납하듯 팔려갔던 이택근이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뉴스는 신선했다. 히어로즈는 50억이라는 금액을 통 크게 쓰며 ‘택근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는 말을 더했다. 그 뒤로 현대가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김병현을 데려오는 등 구단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전해줬다.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성적보다도 사뭇 달라진 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가을야구에는 실패했지만 히어로즈는 전과 달라졌다. 다시 현대의 느낌이 나는 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히어로즈는 변하였다. 무기력함의 상징 같았던 히어로즈의 버건디 컬러는 모든 구단이 만나고 싶지 않는 상징으로 탈바꿈했다. 마치 과거의 검정과 녹색의 콜라보레이션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색이 된 것이다. 구단이 바뀐 만큼 나도 더욱 야구를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격한 세이버매트리션이라 부르기엔 부끄럽지만 몇 가지 계산을 하면서까지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깊게 보기 시작한 야구는 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계산을 떠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히어로즈는 창단 첫 가을야구를 했으며,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2013년은 히어로즈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일 것이다. 


현대라는 팀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처음 야구를 알게 해 준 현대를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수많은 시련에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왔으니. 지금 그들의 빈자리는 서울 목동의 히어로즈가 메우고 있다. 목동과 서울 모두 내가 사는 연고지는 아님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팀으로 엮인 것임에 분명하기에 히어로즈를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의 구절처럼, 나는 아직도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비상하는 초인을 동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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